[카앤스포츠=방영재] 7월 18일, 한여름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른 인제스피디움 피트(Pit). 620마력 V10 자연흡기 엔진이 뿜어내는 맹렬한 배기음 사이로, 오직 모니터 속 데이터 그래프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묵묵히 팀을 지휘하는 이가 있다.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에서 한국 기술진의 저력을 증명하고 있는 레이스그래프(RaceGraph)의 조순호 대표 겸 수석 엔지니어다.
올해 이탈리아 오토모빌리(람보르기니 분당·부산)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아시아 최대 규모인 4대의 경주차를 투입하며 대도약에 나선 조순호 대표를 만나, 팀의 성장 배경과 대회의 매력, 그리고 그가 꿈꾸는 한국 모터스포츠의 미래를 들어보았다.

글로벌 스탠다드, 그리고 ‘내구성이 증명하는’ 람보르기니의 매력
Q. 국내 모터스포츠 팬들에게 ‘람보르기니 슈퍼 트로페오 아시아’는 아직 다소 생소한 대회입니다. 이 대회가 가진 매력은 무엇인가요?
조순호 : 람보르기니 본사에서 직접 주관하고 관리하는 대회로 경주차 세팅부터 규정, 기술 협약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스템이 글로벌 스탠다드(세계 표준)에 맞춰져 있습니다. 아시아 무대이지만 상위권 선수들과 엔지니어들은 대부분 유럽이나 글로벌 무대에서 활동하는 쟁쟁한 이들입니다. 저희는 한국인 중심으로 팀을 구성해 이 거대한 글로벌 무대에서 우리의 기술력을 시험하고 증명해 나가고 있습니다.
Q. ‘람보르기니 우라칸 슈퍼 트로페오 EVO2’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조순호 : 엔지니어로서 여러 경주차를 경험해 봤지만, 람보르기니의 경주차가 가진 가장 큰 강점은 단연 ‘뛰어난 내구성’입니다. 타 브랜드에 비해 트러블이 현저히 적고 안정적입니다.
여기에 본사에서 파견된 테크니컬 서포트 팀의 존재도 엄청난 매력입니다. 전 세계에서 달리는 100여 대의 슈퍼 트로페오 경주차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지속적인 기술 업데이트(테크니컬 블리틴)가 이뤄지며, 문제가 발생했을 때 본사 엔지니어들이 즉각 투입돼 해결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스페어 파츠 공급도 완벽해서 사고로 경주차가 대파되더라도 다음 날 섀시를 통째로 바꿔서라도 경기에 나갈 수 있는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합니다.

엔지니어의 갈증에서 피어난 ‘레이스그래프’
Q. ‘레이스그래프’라는 팀 이름에 담긴 의미와 창단 배경이 궁금합니다.
조순호 : 원래 레이스그래프는 ‘레이스 엔지니어링 컨설팅’으로 출발한 회사입니다. 저는 슈퍼 6000 클래스에서 3년 연속 챔피언을 차지한 팀의 엔지니어로 커리어를 쌓았습니다. 더 큰 글로벌 무대에 대한 갈증이 생겨 TCR, 카레라컵, GT4 등을 경험하며 눈을 넓혔지만, 저의 이력만으로는 FIA 규격의 세계 무대에서 엔지니어로서 한계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내가 직접 차를 구입해 철저히 탐구하고 공부해서 준비된 상태로 세계에 다시 도전하겠다’는 무모한 포부로 코로나 시기 때 차를 들여왔습니다. 초기에는 국내 커스터머(고객) 드라이버 수요가 적어 차가 반 년 넘게 서 있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2023년 아시아 시리즈가 재개된다는 소식을 듣고 람보르기니 본사에게 무작정 메일을 보냈는데, 흔쾌히 아시아 디렉터를 연결해 주며 코리아 측의 지원을 이끌어내 주었습니다. 그 킥오프(Kick-off)가 없었다면 지금의 레이스그래프는 불가능했을 겁니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제1원칙은 ‘안전’
Q. 일반 팬들이 이해하기 쉽게 ‘레이스 데이터 분석’이 레이싱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설명해 주신다면요?
조순호 : 경주차에는 속도, 온도, RPM, 지포스(G-Force) 등을 측정하는 정밀한 계측기가 장착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수많은 숫자를 공학적, 물리적, 수학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엔지니어의 역할입니다.
과거처럼 드라이버의 주관적인 코멘트나 느낌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경주차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객관화된 수치로 판단합니다. 드라이빙의 문제점을 수정하고, 경주차 셋업을 바꾸며, 나아가 타이어 퍼포먼스를 분석해 ‘언제 피트인(Pit-in)을 할 것인가’라는 레이스 전략을 짜는 의사결정의 가장 확실한 도구입니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요.
Q. 레이싱 팀을 운영하는 대표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조순호 : 저는 단연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성적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팀원들, 즉 ‘인적 재산’입니다. 피트(Pit)는 생각보다 크고 작은 부상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위험한 공간입니다. 차나 부품은 부서지면 새로 사거나 고치면 그만이지만, 사람은 한 번 다치면 되돌릴 수 없는 손상을 입습니다.
그래서 팀원들에게 늘 강하게 이야기합니다. “차가 넘어지든 부서지든 절대 몸으로 잡으려고 하지 마라. 손 집어넣지 마라. 차가 깨져서 발생하는 모든 금전적인 책임은 다 내가 진다”라고요. 돈으로 차를 고치는 건 문제가 아닙니다. 제게 가장 마음 쓰이는 일은 팀원들이 다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팀원이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레이스를 마치는 것을 가장 전면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레이스그래프의 다음 지향점, 그리고 끊어진 ‘사다리’를 잇는 꿈
Q. 레이스그래프의 향후 계획과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표는 무엇인가요?
조순호 : 저희는 람보르기니 슈퍼 트로페오에만 머무를 생각이 없습니다. 향후 더 높은 클래스, 더 큰 무대(글로벌 내구레이스나 스프린트 레이스)로 나아가기 위해 현재 여러 메뉴팩처러(제조사), 드라이버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습니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명문 팀들과 동등하게 어깨를 겨루는 것이 지향점입니다.
또한, 저희 팀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단지 선수를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젊은 ‘영 드라이버(Young Driver)’들을 성장시킨 뒤 더 높은 무대로 배출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현재 대한민국 모터스포츠는 카트(Kart)를 타던 유망주들이 실력을 쌓아도, 그 상위 단계에서 국제 규격에 맞는 포뮬러 단계가 없다 보니 곧바로 양산차 기반의 경주차로 넘어오게 됩니다. 그 중간 사다리가 끊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국내에서 가장 높은 클래스를 타더라도, 글로벌 규격과 동떨어져 있다 보니 해외 진출 시 “그 이력이 뭔데?”라는 차가운 시선을 받게 됩니다. 제가 엔지니어로서 뼈저리게 겪었던 현실입니다.
FIA가 강조하는 F4와 같은 포뮬러를 국내에 정착시키고 영 드라이버를 발굴하는 것, 그리하여 꿈이 있는 한국의 젊은 레이서들이 세계 무대로 당당히 뻗어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팀이 되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레이스그래프를 응원하는 팬들에게 한 말씀 남기신다면?
조순호 : 최근 들어 저희 팀을 알아봐 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팬분들이 늘어나 큰 뿌듯함을 느낍니다.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대한민국 팀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끊임없이 도전할 테니,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철저한 공학적 접근과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안전 철학, 그리고 미래 세대를 향한 사명감까지. 세계 무대에서 대한민국 모터스포츠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레이스그래프와 조순호 대표가 만들어갈 거침없는 질주를 기대해 본다.


